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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데이트(2019. 09. 30.) – 2019년 9월 3일 부로 비영리 게임은 등급심의 대상에서 제외 되었습니다. 관련 글은 “비영리 게임 등급심의 대상 제외 관련 정리” 글을 참고 바랍니다.

들어가기 앞서

게임 규제와 관련, 잊혀질만 하면 나타나 한바탕 시끄럽게 만드는 이슈 중 하나는 게임 등급분류 제도와 관련한 이슈이다. 올해 초에도 비영리 자작 플래시 게임 콘텐츠를 서비스 하던 주전자닷컴 외 5개의 플래시 게임 사이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서비스를 중단하는 사태가 있었다.1

게임물 등급 분류 제도와 관련한 여러 문제들은 이미 10여년 전인 2008년 부터 계속 제기되어 왔었다.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서 2007년 말 온라인 상에서 운영되는 플래시 게임 66,727개의 게임 중 0.35%만이 등급분류를 받았다는 지적이 나왔다.2 이 이후에도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와 관련한 굵직 굵직한 문제점들이 계속 터져 나왔는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목록을 참조 바란다.

  • 2010년 아마추어 게임 심의 사태 – RPG 메이커(쯔꾸르) 커뮤니티에 대한 게임 등급분류 요구로 촉발.
  • 2011년 국내 애플 앱스토어 게임 카테고리 개방 – 이전까지는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로 인해 애플, 구글 앱스토어의 게임 카테고리가 막혀 있었다. 이후, 모바일에만 자체 등급 분류를 허용하면서 사태 일단락.
  • 2014년 동인 게임 심의 사태 – 2차 창작 동인 게임에 대한 게임 등급 분류 요구로 촉발. 참고로 2차 창작 동인 게임은 저작권 문제, 동인 성격 등의 문제로 현재 등급분류가 거의 불가능하다.
  • 2014년 스팀 게임 심의 사태 – 게임 DRM 서비스인 스팀에서 유통 중인 게임에 대한 등급분류 요구로 촉발. 현재는 관련 제도가 바뀌어 자율심의가 가능하지만 정작 스팀 및 운영사인 밸브는 여기에 대해 대처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 2014년 ‘불워크’ 수정 권고 사태 – 인디 게임인 ‘불워크’의 게임 소개 내용 수정을 게임물관리위원회가 권고하면서 촉발.

이 모든 문제는 낙후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기인한다. 법률은 대한민국에서 유통되는 모든 게임(비영리 포함, 여기에는 국내에서 접근 가능한 해외 서비스-스팀 등-도 포함 된다)은 심의를 받아야 하며, 심의를 받지 않은 상태로 게임물을 유통할 경우 형사 처벌(벌금 및 징역)을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에 대한 다양한 문제점들이 터져 나올 때 마다, 정부(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 그리고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위 문제들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바다이야기 사태가 남긴 트라우마청소년 보호라는 명목로 인해 사전 심의를 철폐하거나, 비영리 게임물 등에 대한 심의를 완화하는 것은 그간 소극적으로 대처해 왔다.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의 문제점들 중에서 가장 발빠르게 해결 된 것은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 뿐으로 사실상 특정 기업 특혜에 가까웠던 과거의 모바일 게임 자율 심의. 허울 뿐인 게임물등급분류 기관의 민영화. 통제는 국가가 하면서 모든 책임은 기업에 떠넘긴 자율 심의 제도 등이 있다.

비영리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의 탄생

위에서 언급한 비영리 자작 플래시 게임 콘텐츠에 대한 심의 요구 사태로 인해 또 한번 게임 제작자, 게임 사용자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이번에는 정부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이전과는 달리 발빠르게 정책 브리핑 자료3를 내어 제도 개선 시도를 알렸다.

그리고 게임물 등급분류 기관인 게임물 관리 위원회에서도 2019년 4월 25일 부터 비영리 게임물에 대한 등급분류 신청4을 받기 시작했다. 이는 기존의 등급분류 방식에서 비영리 게임물에 물리기 어려운 수수료 부분를 면제하여 등급 분류를 하게 한 것이다.

비영리 게임물 수수료 면제 대상은 일반인들 중, 비영리 목적으로 게임물을 제작 및 유통하는 경우이다. 단 저작권에 문제가 있을 경우 등급분류 처리가 되지 않는다-그런고로 2차 창작 동인 게임은 등급분류 신청을 할 수 없다.

비영리 게임물 등급분류 신청 방법과 처리

비영리 게임물 등급분류를 신청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 회원 가입을 하고, 공고에 떠 있는 신청서를 꼼꼼히 작성한 후, 담당자 메일(gamerating@grac.or.kr)로 신청서를 보내면 된다.

만약 서류에 오류가 있거나, 게임위 측에서 추가 자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 몇 번의 자료 보충 안내가 메일로 내려온다. 이러한 과정이 끝나면 게임은 등급분류 회의를 거쳐 등급이 확정되고, 등급분류증명서와 함께 안내 메일이 오게 된다.

비영리 게임물 등급분류 신청 시작

제도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끝났으니 이제부터 등급분류 경험을 이야기해 보겠다. 등급분류를 신청한 게임은 2008년에 개인적인 공부 및 당시 게임 등급분류 제도를 ‘까기’위해 만들었던 플래시 게임인 GRBT 였다 – 게임 제작과 관련한 글과 게임 다운로드는 여기를 참조 바란다.

GRBT – 지도상에 나타나는 게임물을 클릭하면 심의 처리가 된다. 하지만 미친듯이 많이 등장한다.

신청서 작성은 한컴의 한글 워드프로세서(HWP)를 사용해야 한다. 사실상 공공기관 이외의 사용률이 극히 저조한 프로그램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행정 접근성 면에서 올바른 일인가 하는 의문이 잠깐 들었다.

신청 서류는 비영리 게임이라고 해서 기존의 신청 양식과 크게 다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신청서, 내용정보 기술서, 설명서 등은 일반적인 등급분류 신청 양식과 동일하고 여기에 일종의 ‘서약서’만 추가 되어 있는 형태다.

GRBT는 매우 단순한 게임이었기 때문에 신청서 작성과 관련 자료 준비는 사실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번 더 검토를 하고 신청 메일을 보냈을 때 까지도 걸린 시간은 2시간 내외였다. 이 때 까지만 해도, 금방 등급분류가 나올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기나긴 서류 수정

메일 신청 후 만 하루가 지나서 서류 보완을 요청하는 메일이 도착했다.

보내주신 서류에 게임파일이 누락되어 보완요청 드립니다.

1차 서류 보완 메일

아니, 게임 등급분류를 신청하면서 게임물을 안 보내?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착오를 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는데, 공고에서는 게임파일 제출을 필수가 아닌 필요시로 명기 했놨기 때문이었다.

접수 시 제출자료 – 관련 공고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후에도 게임물 내용이 담긴 동영상을 추가로 요구하기도 했는데, 위에서 확인 가능하듯, 애초에 필수 제출이라고 하지도 않았던 것들을 요청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내심 짜증이 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자료 제출에서만 끝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현재 위원회에서는 한글과 영문을 같이 병행해서 제명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명을 변경 후 회신 해주시기 바랍니다.

2차 서류 보완 메일
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게임 제명에 한글과 영문을 병기하는 규정은 있다.5 문제는 그 규정이 규정집 안에만 있고, 서류 양식 작성법 등 안내는 전혀 없었다는 것.

이후에도 서류 보완 문제는 계속 발생했다. 이번에는 게임 동영상을 첨부하지 않았다는 것. 동영상 역시 게임물 첨부 문제와 마찬가지로 필요시로 안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때는 짜증이 거의 한계에 다달았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동영상 제출 이후에 발생 했다.

제출하신 게임 동영상을 확인 결과 미션 실패관련 영상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션 성공 영상을 추가로 제출하여 주시기 바라며, 미션 성공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 미션성공시 다음 스테이지로 진입, 미션성공시 스코어를 저장 등.

4차 서류 보완 메일

GRBT는 (해당 개발 문서에도 나와 있듯) 국감에서의 말도 안되는 지적을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이를 위해 게임을 클리어 하지 못하도록 난이도를 세팅해 두었다. 때문에 1. 제작자도 미션 성공이 거의 불가능 2. 만든지 10년이 더 넘은 게임이라 치트 모드 등 삽입 불가능(이제는 플래시 라이센스도 없다) 한 문제가 있었다.

이 때 부터는 서류 보완 요청 ▶ 수정 서류 제출 ▶ 결과 메일 전달 단계를 거칠 때 마다 거의 일주일을 소모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진짜 심의 포기를 내릴까 말까 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그냥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 이런식으로 사람 정신을 잡아먹는 일이 되어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라는 생각으로 성공 영상 제공이 어려운 이유, 그리고 게임에서 성공이 어려운 이유에 대한 답변과, 서류 제출에 대한 문의 메일을 보냈다. 제기 된 서류 문제에 대한 답이 오길 기다린 끝에, 일주일이 지난 다음 답 메일을 받았다.

신청하신 ‘GRBT: Game Rating Board Tycoon(지알비티: 게임 등급 분류 타이쿤)’ 게임물이 2019년 5월 29일 제20차 게임물관리위원회 회의에서 ‘전체이용가’로 등급결정 되었음을 안내드립니다.

등급분류 결정 안내 메일

2019년 5월 9일에 처음 접수를 한 이후, 2019년 6월 3일에 갑작스러운 등급결정 안내 메일을 받았다. 한달이 조금 안 되는 기간이 소요 된 것이다.

직접 경험해 본 제도의 문제점

사실 개인적으로 비영리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를 이런식으로 만든 이유를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직접 심의 신청을 해보고, 등급분류를 받기까지, 많은 문제들이 눈에 띄었고, 기관 및 제도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네이버 웹툰 – 하이브 중

첫째, 제도 시행에 실제 수요자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비영리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의 주 수요자는 게임위의 공고에도 나와 있듯, 청소년, 일반 아마추어 게임 개발자 등이 주 수요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접수 서류 및 행정 절차, 규정은 기존의 기업 대상의 등급분류 제도를 그대로 따왔다. (단지 수수료만 면제 했을 뿐이다)

즉, 청소년이나 일반 아마추어 게임 개발자들이 규정집을 찾아가면서 서류를 꼼꼼히 작성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너는 작성에 한 시간도 안 걸렸다며? 그거야 나는 업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니까. 게다가 그 서류는 한달 가까이 보완 요청을 받았다. 게임 제작 수업을 받고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네가 만든 게임을 친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둘째, 게임 제작에 들이는 노력보다 심의에 들이는 노력이 더 크다. 등급분류를 신청한 GRBT를 만드는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들었을까? 물론 개인적으로는 말도 안되게 긴 시간이 걸렸지만, 사실 플래시를 익숙하게 다루는 사람이라면 제작에 1시간도 안 걸릴 게임이다. 그런데 등급결정 까지 소요 된 시간은 한달 가까이 걸렸다.

제작에는 1시간 밖에 안 걸리는 게임이 심의 등급 받는데 한달이라고? 그리고 그게 끝나야 친구들에게 내가 만든 게임을 자랑 할 수 있다고? 과연 수요자들이 제도를 쓰려고 할까? 선택은 두 가지 중 하나다. 게임 제작을 때려치우고 준법 시민의 삶을 살던가, 심의를 받지 않고 게임을 배포해 범죄자로 살던가.

셋째, 별 일 아닌 일을 크게 만들어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다. 심의등급 분류를 위해 제작자와 등급분류 담당자와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수정을 요청하고, 수정해서 답하고, 그걸 검토하고, 또 다시 수정을 요청하는 일들이 계속 되었다.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게임의 등급분류를 위해 행정력이 한달 동안이나 투입됐다는 것도 생각 해보자. 명백한 세금 낭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넷째, 일 처리 과정이 깜깜하다. 모든 과정이 메일을 통해 이뤄지는 것은 대체 내가 신청한 일이 어디까지 처리 되었는지 모르게 만든다. 답 메일을 받는게 일주일 단위로 늘어지기 까지했다. 안되겠거니 하고 포기하려는 순간에 등급분류 결정 메일을 받았다. 행정 및 공공기관에서 민원에 대한 적절한 피드백을 중시한지도 십수년이 지났다. 굳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경험을 하고 싶진 않았다.

이젠 이 문제 좀 해결합시다(제발)

똑같은 일이 10년이 넘게 반복 되었다. 그때 마다 여론이 잠깐 시끄러워지고 대책을 발표하고. …… 그 뿐이었다.

게임위에서 비영리 게임 등급분류 수수료를 면제한다고 했을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이 문제는 어차피 등급분류제도의 근간인 법이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게임위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런 임시조치 뿐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솔직히 이렇게 할 거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낫지 않나 싶다.

내가 이른바 최근의 게임 질병 등록 반대 운동에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사실 이 문제와 연관이 있다. 게임인-특히 산업계는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인 코멘트를 한 적이 없다. 직접 이해 당사자인 학생 개발자, 동인 게임 개발자, 아마추어 게임 개발자 등 미래의 게임 산업을 담당하게 될 사람들만 목소리를 높여왔고, 이들은 실망감만 쌓은 채 게임 산업의 구성원이 되었다.

이 나라는 게임을 자유롭게 만들고 배포 할 자유부터 막혀있다. 이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도 10년이 넘도록 해결 못하면서 게임은 문화다라고 주장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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